[특별기고] 기로에 선 의료기기 산업, ‘희생’이 아닌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이영규 이사장(한국의료기기협동조합)

▲ 한국의료기기협동조합 이영규 이사장▲ 한국의료기기협동조합 이영규 이사장
매년 5월 29일은 대한민국 의료기기인들에게 가장 뜻깊은 날입니다. 올해로 19회를 맞이한 '의료기기의 날'은 2003년 의료기기법 제정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돼, 지난해부터는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어 그 위상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의료기기 제조산업을 대표하는 단체의 대표로 기쁜 마음으로 축배를 들기에는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혁신의 성취 뒤에 가려진 ‘사투’의 현장 최근 우리 조합 회원사들은 비절개 로봇 수술 플랫폼, 초음파를 활용한 치매 물질 배출 기기 등 세계를 놀라게 할 혁신 제품들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수많은 과학자의 밤낮 없는 연구와 국가적 자원이 투입된 소중한 결실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합니다. 어렵게 인허가의 문턱을 넘은 혁신 제품들이 정작 시장에서는 복잡한 규제와 수가 체계에 가로막혀 외면당하기 일쑤입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전쟁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 붕괴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쳤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소재와 부품 수급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고, 부품 하나를 바꿀 때마다 발생하는 막대한 시험검사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의 몫이 되고 있습니다. 조합 차원의 공동물류 사업과 다양한 정부 지원책이 시행돼 숨고를 틔워주고는 있으나, 현장의 고통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현실입니다. ‘행정’의 잣대가 아닌 ‘환자’의 희망을 보아야 우리는 종종 건강한 일반인의 관점에서만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곤 합니다. 물론 안전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에게 새로운 의료기기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치료의 기회’이자 ‘절실한 희망’입니다. 조금은 다른 시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 곁에서 ‘필수 의료기기’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격 논리에만 매몰된 수가 체계 탓에, 한때 60여 곳에 달하던 국내 주사기 제조사는 현재 5개사 정도만 가동될 정도로 제조산업이 무너졌습니다. 공정 자동화로 혁신을 거듭해도 마진율이 ‘제로’에 수렴하는 비정상적인 구조 속에서, 제조기업들은 더 이상 버틸 힘도, 의지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업의 ‘희생’으로 쌓은 성은 지속될 수 없어 존경하는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 여러분, 지금의 대한민국 의료기기 산업은 여러분의 눈물겨운 헌신과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현장을 사수해 주시는 여러분께 조합 이사장으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러나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기업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혁신이 제가치를 인정받고 시장에서 정당하게 선택받는 ‘상생의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정부와 사회는 우리 산업이 과연 지속 가능한 상태인지 엄중하게 살펴야 할 때입니다. 한국의료기기협동조합은 여러분이 만든 우수한 제품이 환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소통과 지원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의료기기의 날이 의료기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고, 의료기기 제조기업 종사자들의 노고를 함께 돌아보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의료기기의날' 수상의 영예를 안으신 분들과, 또 산업 전초기지에서 땀 흘리는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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